일본 회사 20년차, '일 잘하는 사람'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알고 보니 나, ‘이것도 몰라?’ 소리 들을까 무서워서 질문도 못 하는 꼰대였다.
일 잘하는 사람 = 전문가?
일본 대기업에서 기술직으로만 20년 넘게 일했다. 애 셋 낳고 키우며 그야말로 버티는 심정으로 다녔다. 그러다 올봄, 난생 처음 해외사업부로 발령이 났다. 완전 멘붕.
원래 내가 생각하는 ‘일 잘하는 사람’은 어려운 기술을 다루는 전문가였다. 데이터만 보고도 이상을 찾아내고, 특허를 내는 그런 사람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새 부서의 풍경은 좀 달랐다. 딱히 전문 기술도 없는데 유독 모든 사람에게 의지가 되는 한 분이 눈에 띄었다. 직급이 높은 것도 아닌데, 왜 저 사람한테만 다들 질문하고 상담할까?
지켜보니 답은 간단했다. 그는 그냥 계속 물어봤다. “이거 잠깐 확인 좀 해도 될까요?” “이거 어땠더라요?” 처음엔 ‘저런 것까지 물어본다고?’ 싶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고 보니 알겠다. 그는 질문을 한 게 아니라, 일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었던 거다.
질문하면 지는 거다
부서를 옮긴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질문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사내 메신저 창을 연다. “ㅇㅇ씨, 바쁘신데 죄송합니다만……” 여기까지 치고 지운다. 다시 썼다가 또 지운다. ‘지금은 바쁘겠지.’ 창을 닫는다. 5분 뒤 다시 연다.
아마 사내 메신저 열었다 닫기 대회가 있었다면 내가 사내 톱클래스였을 거다. 결국 혼자 한 시간 끙끙 앓다 질문하면, “아, 그거 이 자료 보시면 돼요” 하고 30초 만에 끝났다. 내 소중한 한 시간은 어디로 간 걸까. 😭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질문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베테랑 직원이 전입 왔는데 이런 것도 모르냐는 소리를 들을까 봐 창피했던 거다. 하지만 일 잘하는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안 물어보는 게 지는 거’였다.
AI도 번역 못 하는 영어
어느 날, 해외 출장 중인 직속 상사에게서 긴급 연락이 왔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업무 요청. 편리한 세상이다.
해외 지점에서 온 영문 자료를 번역해달라는 것이었다. 20년 차 베테랑이 이것도 못하겠나 싶어 자신 있게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영어지? 문장마다 개성이 너무 강해서 도무지 해독이 안 됐다.
일단 회사에서 쓰는 AI 번역기에 넣어봤다. 하지만 번역된 한국어조차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원본의 강력한 개성은 번역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한참을 끙끙대다 백기를 들었다. “부장님, 저 이거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AI 번역기도 있는데 영어 하나 해결 못 해서 도움을 청하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그런데 그 후의 반응이 더 재밌었다. 다른 상사와 동료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 그 사람 영어.” “그분 영어 원래 좀 특이하기로 유명해.” “AI도 번역 못하는구나.” 이런 정보는 미리 좀 알려주면 안 되나.
결국 그 번역은 전문가에게 넘어갔고, 내용을 다시 문의하는 데만 5시간 이상이 걸렸다. 만약 내가 오기를 부려 혼자 며칠을 붙잡고 있었다면 시간만 날렸을 것이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일을 내팽개치는 게 아니다. 회사 전체의 시간을 지켜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나는 해외사업부에서 다시 배웠다.
